원두를 냉동실에 넣어도 되는지는 커피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갈리는 주제입니다. 된다는 쪽과 안 된다는 쪽이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더 헷갈립니다.
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넣어도 됩니다. 다만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.
1원두를 상하게 하는 것 네 가지
보관법을 고르기 전에 무엇으로부터 지키는 건지 알면 판단이 쉬워집니다. 원두 맛을 떨어뜨리는 건 크게 네 가지입니다.
산소: 볶은 원두는 공기와 닿는 순간부터 산화가 시작됩니다
습기: 물기를 만나면 향 성분이 빠져나갑니다
열: 온도가 높을수록 모든 변화가 빨라집니다
빛: 직사광선은 특히 좋지 않습니다
냉동이 도움이 되는 건 이 중 열을 확실히 눌러주기 때문입니다. 온도가 낮으면 산화 속도가 느려집니다. 여기까지는 냉동 찬성 쪽 이야기가 맞습니다.
2그런데 진짜 문제는 온도차입니다
냉동 반대 쪽이 지적하는 건 냉동 자체가 아니라 꺼내는 순간입니다.
차가운 원두를 상온에 꺼내면 표면에 물기가 맺힙니다. 여름에 아이스 음료를 담은 컵 겉면에 물이 맺히는 것과 같은 일이 원두 표면에서 일어납니다. 그 물기가 향 성분을 함께 끌고 나갑니다.
한 번이면 큰 문제가 아닙니다. 문제는 매일 아침 꺼냈다 넣었다를 반복할 때입니다. 그때마다 조금씩 젖었다 마르기를 반복하면서 원두가 눅눅해집니다.
피른은
냉동이 나쁜 게 아니라, 꺼냈다 넣었다가 나쁩니다. 그래서 답은 소분입니다.
3그래서 이렇게 하시면 됩니다
1
한 번 쓸 양씩 나눕니다
하루치 또는 이삼일치씩 작은 봉투나 통에 나눠 담습니다. 공기를 최대한 빼주세요.
2
나눈 채로 얼립니다
봉지째 넣지 않습니다. 원봉지 하나를 계속 여닫는 게 제일 안 좋은 방식입니다.
3
꺼낸 건 그날 다 씁니다
실온에 십오 분에서 삼십 분 정도 두어 표면 온도가 올라온 뒤 열면 물기가 덜 맺힙니다.
4상황별로 정리하면
2주 안에 다 쓴다: 냉동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. 빛이 안 드는 서늘한 곳에 밀폐해서 상온 보관
한 달 넘게 두게 됐다: 소분해서 냉동. 이때는 냉동이 확실히 낫습니다
큰 봉지를 샀다: 2주치만 덜어 상온에 두고 나머지는 소분해서 냉동
선물로 받아뒀다: 언제 마실지 모른다면 받자마자 소분해서 냉동
5하지 않으시는 게 좋은 것
냉장실 보관: 냉동만큼 온도가 안 내려가면서 습기와 냄새는 더 받습니다. 김치나 반찬 냄새가 원두에 붙습니다
원봉지째 냉동: 매번 여닫으면 소분의 의미가 사라집니다
투명 용기에 담아 조리대 위: 보기에는 예쁘지만 빛과 열을 다 받습니다
가스레인지나 전기포트 옆: 하루에도 몇 번씩 뜨거워지는 자리입니다
용기는 어떤 게 좋은가
비싼 걸 사실 필요는 없습니다. 다음 두 가지만 되면 충분합니다.
밀폐가 되는가
빛이 안 통하는가. 투명 용기라면 서랍이나 찬장 안에 두시면 됩니다
원두 봉지에 달린 동그란 밸브는 볶은 뒤 나오는 가스를 빼주는 장치입니다. 가스는 나가고 공기는 덜 들어오게 되어 있어서, 원봉지가 밀폐된다면 그대로 쓰셔도 괜찮습니다.
자주 묻는 것
얼린 원두를 바로 갈아도 되나요?
됩니다. 오히려 차가운 상태에서 분쇄가 더 고르게 되는 편입니다. 다만 꺼낸 봉투를 다시 냉동실에 넣지는 마세요.
원두 말고 가루로 갈아둔 것도 얼려도 되나요?
얼릴 수는 있지만 가루는 공기와 닿는 면적이 훨씬 넓어서 애초에 오래 못 갑니다. 갈아둔 건 며칠 안에 쓰시는 게 낫습니다.
로스팅 날짜는 얼마나 지난 게 괜찮나요?
볶은 지 2주에서 한 달 사이가 편하게 드시기 좋습니다. 갓 볶은 원두는 가스가 많아 맛이 들쭉날쭉할 수 있습니다.
냉동하면 맛이 정말 좋아지나요?
좋아진다기보다 덜 나빠집니다. 보관은 맛을 올리는 일이 아니라 지키는 일에 가깝습니다.
마지막으로
보관에 신경을 쓰는 이유는 결국 내린 다음 한 잔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서입니다. 그런데 잘 보관한 원두로 잘 내려놓고, 마시는 동안 얼음이 다 녹아 밍밍해지면 앞의 수고가 좀 아깝습니다.
원두만큼은 아니어도, 담는 잔도 한 번쯤 볼 만한 자리입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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